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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브랜드와 소비자를 잇는 새로운 방식
2022.10.07
게임의 설정집, 앨범의 콘셉트북 등에서 소개되어 흘깃 보는 콘텐츠에 불과하던 세계관이 팬덤경제가 도래하면서 가장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 게임, 음악 등 콘텐츠 산업뿐 아니라 대다수의 산업에서 주목하며 바야흐로 세계관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오늘날,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몰입하게 할 세계관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없는 것이 없는 무한도전’. 이 말의 뜻을 알고 있는가.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2018년에 종영했지만 여전히 ‘무한도전’에서 파생된 밈이나 짤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전에 바이러스 및 사회적 거리두기를 언급한 ‘무한도전’의 장면들이 떠오르며 ‘무한도전 세계관’의 탄생을 알렸다.
이외에도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신인 그룹 뉴진스의 히트곡 ‘어텐션(Attention)’의 후렴구와 비슷한 소절을 부른 장면을 비롯해 미래를 엿본 ‘무한도전’의 수많은 장면들을 사람들이 찾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 ‘무한도전’ 제작진이 미래의 상황을 알고 연출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속 숨어 있던 예언들을 찾아내는 것이 ‘무한도전’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에게 하나의 놀이 문화로 정착되며 ‘없는 것이 없는 무한도전’이라는 밈까지 생겨났다.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 한국 사회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통할 수 있는 콘텐츠 그리고 ‘무한도전’을 그리워하는 현 세대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 ‘무한도전 세계관’이 탄생한 것이다.
현 세대 사람들에게 세계관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다. 그리고 그 세상은 현실일 수도 가상일 수도 있다. 가상 세계관은 현실에 있지 않은 가상의 콘셉트에 자신을 이입해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주로 문화 콘텐츠에서 파생되는 가상 세계관은 콘텐츠에 과몰입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리그오브레전드(LOL), 디아블로 같은 게임 세계관이나 ‘마블’,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영화 세계관이 대표적인 예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지만 매력적인 스토리와 캐릭터 그리고 다양한 ‘떡밥’이 숨겨진 세계관을 접했을 때 사람들은 흥미를 느끼며 과몰입한다.
소셜 빅데이터 상에서도 올해 3분기 ‘세계관’의 언급량이 2019년 2분기 대비 약 2.2배 상승했다. 수많은 세계관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 많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특히 글로벌 문화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Z세대에게 세계관은 그들 세대의 가치를 대변하기도 한다.
세계관에 빠진다는 것은 그 콘텐츠 혹은 그 브랜드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은 필수다. 그렇다고 허술하게 짜인 프레임에 세계관을 갖다 쓰면 곤란하다. 진정성 없이 세계관을 밀어붙이면 외면받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세계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점점 익숙하고 다양해지는 세계관 콘텐츠
먼저 현대 소비자들은 보다 다양한 세계관에 몰입하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세계관’ 하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조사 결과 소셜데이터 상에서 10대는 ‘엑소’, ‘투바투(투모로우바이투게더)’, ‘스엠(SM엔터테인먼트)’ 등 아이돌 세계관에 익숙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2030세대에서는 게임과 같은 판타지 세계관이 가장 많이 언급되었고 40대 이상에서는 ‘역사’, ‘스타워즈’와 같은 시리즈물 세계관에 익숙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점점 넓어지는 세계관의 영역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유년 시절부터 스타워즈를 비롯해 해리포터와 마블 같은 시리즈물 세계관을 접하고 이후에는 학창시절 게임의 판타지 세계관을 학습했다. 그리고 이제는 콘텐츠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물의 콘셉트가 세계관으로 확장되는 것을 아이돌을 통해 경험했다. 기존에 세계관이 스타워즈와 같은 긴 시리즈물 이야기에만 해당되었다면 이제는 게임 산업 그리고 아이돌 산업까지 콘텐츠와 브랜딩의 영역으로 세계관이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관을 접한 경험이 많은 소비자들은 제작자가 얼마나 치밀하게 고민 끝에 세계관을 구축한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세계관은 제작자가 얼마나 진심인지 진정성의 이슈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로 인식될 수 있다.
두 번째는 같이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세계관이 있는 스토리는 친절하지 않다. 방대한 스토리 속에서 의미를 직접 찾아가야 한다. ‘이스터 에그’¹?라고 불리는 숨겨진 장치를 찾고 의미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이 곧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찾은 의미와 이에 대한 해석을 공유하면서 세계관을 이해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은밀하고 은유적으로 의미를 숨겨 놓는 능력이다. 기존의 해리포터 시리즈가 ‘디테일한 설정’으로 세계관을 구축했다면 지금은 ‘은밀한 결말 힌트’가 하나의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해리포터’는 각 캐릭터마다 지팡이 모양과 제조 재료,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개별 스토리 같은 디테일한 설정들이 모여 세계관을 구축했다. 디테일한 설정이 많은 만큼 해야 할 이야기도 많았기에 시리즈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리즈 대작이 아니어도 세계관이 붙을 수 있다. 특히 한국 콘텐츠에서 몰래 결말을 은유적으로 스포하는 것이 트렌드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편 맞히기를 시작으로 각종 드라마, 예능 등에 결말을 이스터 에그로 숨겨 놓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 화제인 ‘환승연애2’의 경우도 포스터 사진 인물들의 시선 방향을 보고 마지막 커플이 누가 될지 맞히는 것이 화젯거리다. 이처럼 함께 의미를 찾고 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면 이미 세계관이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계관은 2차 창작으로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요즘은 아이돌의 신곡 뮤직비디오가 나오면 뒤이어 빠르게 올라오는 것이 리액션 영상과 해석 영상이다.
이처럼 최근 세계관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산업은 단언컨대 아이돌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에스파의 ‘광야’ 세계관처럼 이제는 콘셉트의 역할을 세계관이 대체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팬덤이 중요한 아이돌 산업에서 팬들이 놀 수 있는 이스터 에그가 가득한 세계관은 좋은 비즈니스 수단이 된다. 더 좋은 점은 이들이 2차 창작물까지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본인만의 해석이 담긴 콘텐츠를 만들면서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서만 끝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이 모든 특징들로 본 세계관에서 중요한 점은 기업의 일방적 제시가 아니라 소비자의 참여로 함께 만들어진 문화라는 점이다. 콘텐츠나 엔터 산업에서만 세계관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브랜드에서도 세계관은 필요하다. 소비자들에게 세계관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어디에서든지 적용된다.
세계관이 중요한 이유는 소비자가 효능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가치는 더욱 확장되어 다가올 것이다.
소비자와 함께 만들어 가는 브랜드의 세계관
문화 콘텐츠의 경우는 세계관이 먼저 형성되고 소비할 수 있는 굿즈가 만들어지는 반면에 기업은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공통 경험을 활용해서 세계관을 만든다. 때문에 우리 브랜드의 소비자를 잘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비자와 함께 만드는 브랜드 세계관의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소비자의 화법과 기억을 활용해 브랜드가 직접 세계관을 만드는 방식이다. 빙그레의 ‘빙그레왕국 세계관’이 대표적인 예다. ‘빙그레왕국 세계관’은 메로나, 빵또아, 비비빅 등 각종 빙그레 제품을 캐릭터화해 ‘빙그레우스’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기 위한 스토리를 담은 세계관이다.
사실 빙그레는 이전까지 어릴 때 사먹던 옛날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세계관을 계기로 트렌디한 브랜드로 이미지를 탈바꿈했다. 이미지 쇄신의 결정적인 이유는 소비자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각 캐릭터를 소비자들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이름으로 지으면서 소비자와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메로나 아이스크림 밈으로 유명한 ‘올 때 메로나’를 활용해서 캐릭터 이름을 ‘옹떼 메로나 부르장’과 같이 지으면서 재미와 공감 모두를 잡았다.
또한 타깃 층의 공통된 콘텐츠 경험을 잘 활용했다. 빙그레우스의 메인 타깃인 MZ세대, 특히 1990년대생들은 어린 시절 뚱뚱이 바나나우유와 메로나를 먹으면서 홍은영 작가의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빙그레우스의 그림체가 해당 만화의 그림체와 비슷하다는 사실은 1990년대생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는 콘텐츠의 세계관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브랜드가 도와주는 방식이다. 브랜드가 수단이 된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 ‘007’과 시계 브랜드 ‘오메가’를 들 수 있다. 영화 속 제임스 본드는 항상 오메가 시계를 차고 나온다.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 열광하고 과몰입하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오메가 시계를 차고 싶어 한다. 오메가 시계를 착용함으로써 세련되고 모험심 가득한 제임스 본드의 세계관에 자신을 이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는 ‘카발란 셰리 솔리스트’ 위스키가 등장하는데 영화 개봉 이후 매출이 427% 상승했다. 위스키를 마시면 영화 속 캐릭터의 감정에 더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찬욱 감독이 즐겨 마시는 위스키라는 소문에 그의 세계관에 더 몰입하고 싶은 소비자들이 위스키를 사서 마셨다. 이처럼 세계관은 구매를 부르는 힘이 있다.
세계관이라는 트렌드는 결국 우리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교환하고자 하는 욕구의 증가다. 일방적인 세계관 주입이나 궁금하지 않은 브랜드 역사 추억팔이가 아니다. 브랜드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를 찾고 새로운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때 세계관은 확장된다.
사람들을 매료할 수 있는 세계관을 구축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음 질문들을 먼저 생각해 보자.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찾게 하고 싶은가. 소비자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공통의 기억이 담겨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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