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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에 숨결을 불어넣는 감성 한 스푼

2022.11.11

디지털로 할 수 없는 것이 거의 없는 풍요의 시대다. 해외 직구, 랜선 여행, 택시 호출, 집안 청소, 맛집 웨이팅까지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이 디지털 기술 기반 서비스로 채워지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와 서비스의 끝없는 진화 속에서 문득 궁금해진다. 디지털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그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기술 용어로서 디지털을 바라본다면 디지털의 반대말은 ‘아날로그’다. 디지털 시스템이 다양한 물리적 신호를 0과 1이라는 이진법 형태로 전환해서 정보를 유통한다면 아날로그 시스템은 시간에 따라 연속적으로 변하는 물리량을 연속적인 형태의 정보로 출력한다.

온도, 습도, 소리, 빛 등 자연계에서 시간에 따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신호가 아날로그 신호에 속한다. 시간의 변화를 시계 바늘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아날로그 시계가 가장 대표적인 아날로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효율과 편의로 똘똘 뭉친 디지털 시스템이 약진하는 중에도 여전히 아날로그는 유효할까. ‘아날로그’라는 키워드에 대한 관심 추이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자. 새로운 시스템도, 신조어도, 그렇다고 담론을 움직일 강력한 외부 요인이 있는 것도 아닌 아날로그는 추세적으로 이렇다 할 반등 기회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기 쉽다.

이러한 추측은 대체로 설득력을 가지긴 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은 이례적인 지점이 있다. 채널별 반응 온도가 다르다는 그 지점이다.

트렌드는 어떤 분야에서 발현되는 현상인가에 따라 그 내용을 더 드라마틱하게 반영하는 채널이 있다. 팬덤 문화라면 트위터가, 육아 및 교육 트렌드라면 커뮤니티가 담론의 진원지다. 그렇다면 아날로그는 어떨까.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은 인스타그램, 커뮤니티에서는 하락하고 트위터에서는 유지세를 보인다. 그에 반해 블로그에서는 2020년을 기점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여타 채널에서는 하락하거나 유지되고 있으나 블로그에서 상승 추세를 보인다는 것은 아날로그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인증하고 열광하는 트렌드 현상이나 특정 타깃층의 이슈는 아니지만 매일의 일상을 남길 때 기록하고 싶은 소재임을 뜻한다.

특히나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이 반등하는 시점이 2020년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코로나19라는 비대면 상황 속에서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문화가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와 동시에 디지털 밖 아날로그 세상의 일이 개인들에게 코로나19 이전보다 의미 있는 일상이 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코로나19 이후 아날로그적 경험이 개인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경험이자 개인의 일기장에 기록될 만큼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날로그 감성 : 특별함, 힙함 그리고 근본

지금 소비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아날로그를 경험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에 반응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아날로그 상품 연관어를 4가지 차원으로 분류하고 그중 디지털과는 다른 감성을 전달하는 3가지 아날로그 요소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통한 디지털 소통이 디폴트가 된 오늘날 종이, 펜, 다이어리 등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소통은 특별한 경험이다. 컴퓨터 자판을 이용해서 글을 쓸 수도 있지만 굳이 종이를 꺼내고 펜촉을 들어 자신만의 필체로 글을 쓰는 것은 효율을 포기하고 정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특히 좋아하는 것을 아날로그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필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디지털에서 수많은 텍스트를 언제나 열람할 수 있지만 정말 좋아하는 문구는 손글씨로 써서 곱씹고 몸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날로그 행위는 그 자체가 디지털과 다른 특별한 경험이 되고 소통의 대상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된다.

브랜드에서도 아날로그 소통으로 성의를 전달하는 사례가 많다. 스타벅스를 자주 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종이 컵홀더의 손글씨를 마주한 적이 있을 것이다. 때때로 매장 직원이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같은 안부 메시지를 적어 주는데 손글씨를 발견한 소비자는 이 디테일에 감동해서 인증샷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나에게 직접 손으로 메시지를 써서 보냈다는 점이 브랜드에 성의를 느끼고 감동하는 포인트다. 이 작은 포인트에서 브랜드의 인격이 생겨난다.

카페나 식당에서 키오스크를 통한 메뉴 주문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몇몇 요식업 브랜드는 의도적으로 고객을 아날로그 경험에 참여시킨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TXT 커피는 메뉴 주문을 엽서처럼 디자인된 주문지에 연필로 표시하게 한다. 말이 아니라 종이로 건네는 고요하고도 침착한 소통은 그곳만의 고유한 경험이 된다.

성수동에서 시작해 이제는 핫한 동네면 어김없이 들어선 카멜커피 또한 수기로 주문서를 작성하게 하고 주문서 한 귀퉁이를 찢어서 번호표로 내어 준다. 삐뚤빼뚤 손으로 찢은 번호표는 뽑기의 추억을 연상시키고 매번 모양이 달라 지루한 법이 없다.

손글씨로 쓴 주문서는 키오스크 주문 영수증보다 소셜미디어에 기록하기 좋은 콘텐츠이기도 하다. 이처럼 손글씨를 쓰게 함으로써 브랜드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고 애정을 갖게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아날로그는 힙한 스타일이다. 필름 카메라의 유행이 대표적인 사례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고화질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지만 스마트폰과 디지털 카메라에서 채워지지 않는 필름 카메라만의 감성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에 비해 밝기 조절이나 포커스 맞추기도 어렵고 게다가 찍은 사진을 확인하는 데 비용이 드는 필름 카메라가 인기인 이유는 바로 그 조작의 어려움이 만들어 낸 사진의 투박한 느낌과 어찌 보면 번거로운 인화 과정 속 결과물을 기다리는 설렘에 있다. 효율과 합리가 아닌 남다른 스타일과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디지털과 확연히 구분되는 스타일을 가진 아날로그는 다른 시대적 가치와 결합함으로써 하나의 문화로 확장될 수 있다. 필름 현상소이자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 용품을 판매하는 필름로그는 트렌디한 여행지에 필름 카메라 자판기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재사용이 가능한 업사이클링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만들어 이용자의 호응이 좋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걱정하지 않고 구입하고 이용할 수 있어 환경보호라는 시대적 가치에 동참하면서 일회용 필름 카메라 경험의 문턱도 낮춘 것이다.

LP판도 필름 카메라처럼 힙한 스타일을 대표한다. LP 사운드는 깔끔하게 노이즈를 제거한 디지털 음원 대비 투박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투박함이 디지털 음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LP판의 고유한 감성이며 매력이다.

오리지널에 대한 다양한 변주가 풍성하게 있는 풍요의 시대에 LP 사운드는 과거의 음악이 아니라 오리지널 사운드의 여러 변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LP로 대표되는 힙한 음악 감상 문화가 바 트렌드와 결합되어 ‘LP바’라는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날로그는 디지털에는 없는 오래된 기술의 축적이 만들어 내는 특별한 아우라가 있다. 현대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오래된 유럽의 성당이 여전히 경탄을 일으키는 것과 유사하다.

기계공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와 명품 시계 그리고 오디오 기기에서 이러한 아날로그 감성은 더욱 중요한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한 기계식 작동은 디지털이 넘볼 수 없는 장인정신을 표현한다.

이들 제품이 가진 아날로그 감성은 적용된 기술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과 역사라는 헤리티지를 포괄한다. 아날로그 기술이 디지털 기술보다 더 ‘근본 있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용자들은 디지털 기반의 여러 신기술이 적용되었더라도 마지막 감성 한 스푼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표현되기를 바란다. 

시공간의 제약으로 경험의 질 높인 팝업스토어

지금까지 기술 용어로서 디지털의 반대말인 ‘아날로그’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디지털 기술이 바꾼 일상의 가장 큰 변화인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극단적으로 높은 접근성의 반대, 즉 극단적으로 낮은 접근성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략에서 유효할 수 있을까.

답변부터 하자면 낮은 접근성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을 제약한 낮은 접근성의 사례로 팝업스토어가 대표적이다.

생활변화관측소에서는 3년간 2배 이상 늘어난 키워드를 의미 있는 트렌드 현상으로 보는데 팝업스토어에 대한 관심은 2020년 1월 대비 올해 9월 언급량이 무려 4.6배 증가했다. 이를 통해 상당히 파급력 있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현재의 팝업스토어 붐을 이끌었을까. 팝업스토어 경험의 변화에 대해 분석해 보았다. ‘매장’, ‘백화점’, ‘지하’라는 키워드가 하락하는 것으로 보아 백화점 한 귀퉁이에서 반짝하고 생겼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곤 하던 팝업스토어 경험도 사라지고 있다.

반면 ‘서울’, ‘성수동’, ‘친구’, ‘주말’, ‘웨이팅’ 같은 키워드가 상승하는 것으로 보아 팝업스토어가 주말 약속의 어엿한 목적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방문하는 공간이 되어 감을 알 수 있다. 또한 ‘스티커’, ‘굿즈’는 하락하고 ‘사진’, 공간’, ‘느낌’, ‘포토존’이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희소한 물건을 얻기 위해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희소한 공간 경험을 하기 위해 방문하는 공간으로 팝업스토어의 의미가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팝업스토어는 브랜드의 플래그십스토어처럼 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개의 매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기에 소비자들은 미리 정보를 알아보고 방문 계획을 짜 깊이 있게 공간을 경험한다. 경험의 양이 아니라 질이 다른 것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여러 개의 매장에 균일한 비용을 투입하는 것보다 같은 비용으로 한 개의 브랜드 공간을 정성 들여 디자인하고 한정된 기간 동안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화제성을 만드는 데 더 유리한 전략일 것이다. 정보는 많고 경험은 희소해진 시장에서 팝업스토어는 시공간의 제약을 통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래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은

필자가 만나는 몇몇 브랜드 담당자는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다. ‘메가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그 안에서 플레이하는 브랜드들의 활동이 비슷비슷해지고 있다. 이 같은 시장 환경의 변화 속에서 브랜드는 어떻게 차별적으로 고객에게 각인될 수 있을까. 어떻게 돌출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정답이 될 수는 없겠으나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는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향수 브랜드 ‘르라보’는 기존 향수 유통 방식의 규칙을 깨부수면서 브랜드 경험을 특별하게 만드는 전략을 취한다. 우선 르라보 매장에는 테스트 제품을 제외하고는 미리 만들어 놓은 제품이 없다. 고객이 선택한 향수를 주문과 동시에 레시피에 따라 즉석에서 블렌딩하고 제조 장소와 날짜 그리고 고객이 새기고 싶은 문구를 새겨 제품에 라벨링해 준다.

효율성을 생각한다면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겠지만 그들이 선택한 것은 ‘나만의 향수’를 갖게 되는 경험이다. 제품을 고르고 구매하는 행위에서 더 나아가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온전히 ‘나의 경험’이 된다.

또한 르라보는 샘플도 제품으로 판매한다. 보통 샘플은 이벤트에 의해 지급되거나 구매 고객에게 한정으로 제공되는 것임에 반해 르라보에서는 플래그십스토어의 유선 전화를 통해 샘플을 구매할 수 있다. 유선 전화라는 번거롭기 짝이 없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만큼 고객의 관여도를 높일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렇게 어렵사리 내 손에 들어온 샘플을 그냥 화장대에 던져두겠는가.

마지막으로 ‘시티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이라는 독특한 향수 컬렉션은 구매할 수 있는 기간을 일 년에 한 달로 한정해 놓았다. 그 외의 기간에는 컬렉션에 포함된 각각의 향수가 모티프를 따온 도시에서만 구매할 수 있게 했다. 향수 덕후들은 이 제품을 사기 위해 일년을 기다리고 다른 도시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이처럼 르라보의 마케팅은 압도적인 물량으로 소비자를 푸시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경험을 극도로 제한하면서도 깊이 있는 경험 디자인으로 소비자를 끌어당긴다. 풍요의 시대, 디지털로 할 수 없는 것이 거의 없는 이 시대에 귀해진 것을 돌아보자. 거기에 우리 브랜드에 숨결을 불어넣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